진정한 카발라의 열쇠

개론 - 프란츠 바르돈, 진정한 카발라의 열쇠

idreamabout 2021. 1. 28. 16:47

프란츠 바르돈의 세번째 책 '진정한 카발라의 열쇠 the key of true quabbalah' 독서중입니다. 

 

 

개론 (Introduction)

헤르메스학 입문에 관한 3번째 저작에 나는 '진정한 카발라의 열쇠 Key to the True Quabbalah'라는 제목을 붙였다. 엄격히 말해 이것은 언어(말, Word)에 관한 지식을 다루는 신학이다. 여하간 누군가는 마법 수행을 하여 마법적 발전을 이루었을 것이다. 즉, 누군가는 나의 첫번째 저작인 '헤르메스학 입문'에 기술된 연습과제를 완벽히 숙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앞선 두 책에서처럼 이번 책도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이론편에서 나는 독자들을 카발라라는 어려운 학문의 영역에 앞서 준비시키고, 이어 연습편에서 실제 수행방법(practice)을 수록하였다. 

 

헤르메스학의 난제와도 같은 카발라에 관한 저작은 많지만 실제 수행에는 그 중 극소수만이 쓸모가 있다. 카발라를 공부하려는 사람은 히브리어를 반드시 익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카발라를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늘 있었던 말이다. 카발라의 이론적인 지식은 거의 히브리어로 저술된 것이 보통이며, 카발라 전승의 계보(? the line of a quabbalistic paragon)를 통해 학생들에게 그 사상이 전달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카발라의 수행(실제연습 practice)이나 진정한 카발라의 사용법을 담은 책은 매우 적다. 소수의 유대인 랍비가 카발라의 지식을 가졌지만 십중팔구는 그들의 정통파적인 신념 때문에 그 지식이 기밀로 지켜졌기 때문에 카발라 수행의 아주 작은 조각조차도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카발라에 관한 많은 저술이 이론적인 내용조차도 더 자세한 것은 일절 알려주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카발라에 진지한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실제 수행에 관한 진짜 힌트를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기껏해야 소우주와 대우주에 관한 학문적인 설명을 내놓을 뿐이다. 그래서 카발라를 배우려는 학생들은 카발라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거나, 너무 혼탁한 정보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없거나, 여러 다른 책의 모순되는 내용 때문에 어둠 속에 남게 된다. 

 

나의 이번 저작에는 카발라의 이론과 수행방법을 담고, 수행방법은 특별히 충분하게 다루었다. 근면한 학생이라면 스스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 권의 책에 카발라 전체를 포괄하여 담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경이로운 지식의 진주를 지극히 아름다운 목걸이로 한데 엮는 고통을 감내하였다. 그렇게 하여, 나는 소우주와 대우주를 일컫는 상응의 법칙(laws of analogies)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카발라가 모든 면에서 어떤 빈틈도 없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카발라에서 자주 쓰이는 엄청난 양의 히브리 용어를 가능한 한 적게 사용하고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대체하였다. 어쨌든 적어도 나의 책을 공부하는 독자들은 카발라에 관해 기존의 것과는 꽤 다른 지식, 즉 수행에 실제로 적용이 가능한 카발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수행에 있어 카발라가 실재하는가를 스스로 확신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앞선 두 권의 책 '헤르메스학 입문'과 '소환마법실천'을 체계적으로 거쳐 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함을 이루고자 하는 훈련이 너무 더뎌지고 수행의 성공 또한 매우 느리게 얻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의 책을 그저 이론으로만 공부하려는 독자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여느 학술서적에서 얻지 못하는 지식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식은 지혜가 아니다. 지식은 영혼의 지성적 특성이 발달한 정도에 달려 있다. 반면 지혜는 영혼의 4원소의 균등한 발전을 필요로 한다. 그런 까닭으로 지식은 그저 학문일 뿐이며, 그것만으로는 인간을 마법사로도 카발리스트로도 만들 수 없다. 학식 있는 사람이 마법과 카발라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 힘과 기능에 대해 절대 정확하게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간략하나마 학자와 현자의 차이점을 독자에게 설명하였다. 그저 지식만을 얻는 편안한 길을 따를지, 지혜를 쫒아 험한 길로 나아갈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어느 인종에 속했는지, 지구의 어느 곳에 거주했는지에 관계없이 원시(primitive) 사람들은 이미 그들 나름의 종교가 있었다. 그것은 곧 신에 관한 관념이었고 또한 일종의 신학이론이었다. 이러한 신학이론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현교적인(顯敎, exoteric) 부분과 비교적인(秘敎, esoteric) 부분이다. 신에 관한 지식의 현교적인 부분은 일반 대중들을 위한 것이고, 반대로 비교적인 부분은 교리입문자들과 고위사제들을 위한 것이다. 현교적 지식은 진정한 마법이나 카발라에 대해 절대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다. 따라서 오직 마법사와 카발리스트만이 원시사람들 중의 입문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주 옛 시절부터 이러한 지혜(wisdom)를 비밀로 지키는 것은 가장 신성한 계율이었다. 이것은 첫째로, 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둘째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힘을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 셋째로, 잘못된 사용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독자에게 완전한 지식을 전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독자에게 그 지식을 얻도록 해 줄 수는 있으나 절대 지혜를 줄 수는 없다. 독자는 정직한 수행을 통해 지혜를 얻기 위해 분투해야 할 것이다. 독자가 얻을 수 있는 지혜의 수준은 다시금 본인의 성숙과 개인적 발전의 정도에 달려 있다. 나의 책은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 즉 입문자에게만 가장 높은 수준의 지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가장 높은 진실과 비밀을 책으로 출간함에도 불구하고, 학자와 현자 사이의 큰 차이를 남겨둘 것이며 침묵의 서약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학자에게 있어 지혜는 언제나 신비(비밀, 초자연 occult)로 남아있을 것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입문자에게만 허용되는 것이다. 

 

카발라의 과학, 곧 마법(theurgy)은 매우 오래된 것이며 동양(orient)에서 기원한 것이다. 역사의 여명기에 현자들은 -우리가 이집트의 고대 상형문자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 공통의 언어, 비유적인(metaphorical) 언어 속에 위대한 비밀을 심어 두었다. 고대의 현자들은 비유적인 언어, 즉 상징의 형식으로서만 그들의 지혜를 후대에 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지혜를 흡수하는 것은 언제나 배우려는 사람이 얼마나 성숙한지에 달려 있었다. 동양의 모든 지혜는 오로지 상징적인 언어 속에만 담겨 있었다. 미성숙한 사람에게는 이 지혜가 수수께끼로만 남게 된다. 달리 말하면, 구루라고 부르는 스승의 지도 하에서 개인의 발전을 이루어 필요한 만큼의 성숙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에게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자신을 이끌어주는 구루의 인도가 없다는 전제하에 입문을 다루는 오늘날의 모든 책들이 그 책들을 통한 입문이 불가능할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한 이유이다. 진정한 입문자는 자신의 제자의 발전상태에 맞추어 점진적으로 그 상징과 비유의 언어를 가르쳐야 했고, 그 쓰인 것의 상징적 의미를 설명해주어야 했다. 제자는 곧 스승의 언어에 익숙해져 그 지혜를 다시 상징적인 언어로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신성한 학문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구전으로만 전해져 내려왔다. 스승이 제자에게 하는 설명은 어떤 영감(inspiration)으로 전달이 되는데, 스승이 제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선명해지는(suddenly became clear) 식이다. 이러한 깨달음, 즉 입문을 동양에서는 여러 단어로 말하는데, 예를 들면 "관정(정수리에 물을 부음, abhisheka)", "앙쿠르(angkhur)"가 있다. 준비가 덜 되었거나 미성숙한 제자에게는 스승이 절대로 지혜의 진정한 신비를 밝혀주지 않았다. 물론 마법사와 카발리스트도 가장 높은 지혜를 담은 어떤 문헌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이미 언급했듯이 가장 높은 지혜들은 모두가 상징적인 언어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그런 자료가 미성숙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 그 사람에게 해석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미성숙한 사람이 이러한 지혜들을 그 나름대로의 시각에서 해석하려고 시도해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설명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진짜 해석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동양의 입문자들이 남긴 문헌을 손에 넣은 상당수의 저자들은 항상 같은 오류를 저질렀다. 즉, 그들은 그 자료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지성의 언어로 번역했던 것이다. 그들이 비의나 수행이 담긴 상징을 올바르게 해석하기에는 대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또한 비유로 쓰인 우주의 언어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그 해석을 위해 필요한 훈련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헤르메스학에서 방대한 오류를 낳은 것이다. 문명화된 언어로 터무니없는 수행을 담은 책들이 오늘날 얼마나 많이 출판되었는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지경이다.

 

본저에서 나는 상징을 담은 언어를 지성의 언어로 바꾸어 입문자가 안전한 방법으로 진정한 헤르메스학의 길이자 언어의 비의인 카발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저자 씀.